YP Labs, 커넥팅 Connecting 어플 탈퇴한 후기
내가 혼자 그 바에 간 것은 커넥팅이라는 어플을 깐 날이었다. 하루에 성대를 조금도 울리지 않는 날들이 지속되자 고독에 질식할 것같아 깔았던 어플. 외로운 내가 또 다른 외로운 누군가와 대화를 했더니 사람이 너무 그리워졌다. 사람들의 바스락, 달그락, 이따금 소곤대는 말소리들 속에서 가구처럼 -마치 에릭 사티의 곡들처럼- 구석에 박혀 필사를 할 요량으로 만년필과 책과 노트도 야무지게 챙겼더랬다.
걸어서 30분. 추위를 뚫고 동네라고 하기엔 먼 그 바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 곳은 스윙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바텐더와 나뿐이었다.
그래도 구석에 앉아도 됐을터였다. 나는 그가 딱히 인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바에 앉았고 아마도 mbti검사를 했다면 - 그는 mbti를 싫어하여 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 i로 시작될 것같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살짝 툭툭 던지는 말투에도 실제 사람을 대면한, 너무 간만의 대화라 즐거웠다.
그의 말투와는 다르게, 그의 접객은 세심하고 좋았다. 나는 평소 누군가 묻지 않으면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데 먼저 만들어준 칵테일이 맛있다고도 얘기를 했고 같이 만화 바텐더에 대한 얘기도 하면서 나름 타인과 공감을 하는 기분을 다시금 느꼈다.
대화는 잘 이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불안했다. 평소에 대화 상대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며 중간에 침묵이 길어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였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니 그 긴장도는 더 높아졌고 누구에게서도 카톡이나 메세지가 오지 않았음에도 초조함에 폰을 계속 열어보았다.
그렇게 커넥팅이라는 어플의 게시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피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술 사진을 올리자 (규정상 올리면 안되지만) 댓글들이 달렸고 댓글들에도 답을 하고 바텐더와도 대화를 하니 긴장감이 줄어들었다.
라이트한 걸로 세 잔만 마시자는 나의 최초의 다짐은 예상치 못하게 카발란 솔리스트 비노바리끄도 니트로 한 잔, 바의 시그니처 칵테일도 한 잔하면서 점점 늘어났고, 중간에 다른 남자 손님 셋이 2차로 들렀다 나간 후에도 나는 그 곳에 있었다. 바텐더에게 후쿠오카의 바 몇 군데를 구글 맵으로 위치를 얻고, 피드의 댓글들도 조용해진 후에 나는 다시 고요한 밤의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살짝 퉁명하지만 잘 챙겨주는 남동생같았던 그는 왜인지 조금 기뻐보였다. 바 마감을 조금 이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밤은 추웠고, 어두웠고, 술도 한 잔했겠다, 나는 다시 대화에 자신감이 붙었다. 커넥팅 어플을 다시 켜서 두 명의 파랑이(남성 유저)들과 대화를 했다. 낮에 했던 최초의 파랑이만큼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들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중요한 건 내가 대화를 잘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고 그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렇게 어플이 주는 자기 효능감에 빠져 들었다.
‘역시 나는 말을 잘해‘ 라고 생각한 것도 며칠 지나지 않아 아무리해도 대화를 이어가기 힘든 상대를 만났다.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도 귀찮고 대화 상대에 대한 호기심도 없고 그래서 오가는 캐치볼도 귀찮은, 그저 외로움만 남은 사람. 후에 다른 유저들과 대화해보니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런 사람들의 비중은 꽤 되었고 그로 인해 기분을 망친 사람들도, 상처 받은 사람들도 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플의 공개 게시판인 피드에 더 빠지게 됐다. 나는 불현듯 떠오른 어떤 것(그것이 노래든, 요리 사진이든, ASMR 이든)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았고 완전한 타인들은 칭찬 혹은 비판이라도 하며 반응을 보여줬고, 혹은 나이도 얼굴도 모르는 나를 궁금해해주었다. 그 중 말이 잘 통하는(내지는 나만 통한다고 느꼈던) 사람들과는 계속 댓글을 이어가며 친구처럼 대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문자로, 음성으로 댓글을 남기는 것은 바다 위 유리병에 쪽지를 넣어 보내고 하염없이 나에게도 유리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보낸 유리병이 돌아오면 너무나 기뻤다. 때로는 오고 때로는 오지 않았지만 상관 없었다. 나는 유리병을 엄청 많이 보냈으니까. 졸리지가 않아 잠도 자지 않고 배가 고프지 않아 먹지도 않는 2주였다.
어플은 이미 내 컨트롤 안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종속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컨트롤 프릭인 나는 또 그 점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래서 관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 외롭지 않던, 누군가는 내게 말을 걸어주었던 날들을.
유저들은 왜 그만두냐고 했다. 나는 도파민 중독이 되어서요. 라고 말했다. 그들은 의아해 했다. ‘이게 그렇게 재밌어요..?’
그렇게 끝나버린 대화들에 더 이상 물어봐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번에도 아무도 묻지 않았으나 나는 또 얘기하고 싶어 한 번 끄적여본다.
아, 후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