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이방인의 노래를 보고 판소리가 좋아져버린 친구들과 함께
이자람 갈라 콘서트를 보고 왔다.
2023.07.03 - [바르고 즐기기] - 이자람, 이방인의 노래
출연으로 고수와 기타/베이스 는 지난 번과 같은 세션인 것같다.
2007년에 만들어진 사천가와
2011년에 만들어진 억척가의
하이라이트만 모은 갈라콘서트.
광화문 8번 출입구로 나오니 세종문화회관 뒤쪽이다.
힘들게 계단을 올라갔더니
이제야 아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나는 1층 객석이라 도로 내려가야했다.
여자가 봐도 멋있엉..
포토존도 제대로.
Love in Seoul 2023 이라는 프로젝트에 포함된 것같다.
위플래쉬 인 콘서트도 재밌겠다.
공연장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어 찍을수 없었으나
프로젝터와 조명을 이용해 깔끔한 무대에 곡의 분위기를 살렸다.
사천가는 베르톨트 브레희트의 '사천의 선인'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 사천에 세명의 신들이 나타나 착한사람을 찾으러 다닌다. 그때 순덕이라는 몸집 크고 착한 처녀가 그들을 돕고, 세명의 신들은 앞으로도 착하게 살라며 큰돈을 주고 떠난다. 순덕이는 그 돈으로 마음 분식이라는 분식집을 열고 그 소식을 듣고 뺑사장(순덕이가 전에 알바했던 찌개집의 악덕사장)과 그 가족들이 찾아와 빌붙어 산다. 그것도 고단한데 이번에는 목수가 계약되지 않은 금액을 더 받아야겠다며 찾아온다. 고민하던 순덕이는 사촌오빠 남재수로 분하고(이자람씨가 몰랐어요? 할때까지 진짜 몰랐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의 남재수에게 기가 눌린 목수와 뺑사장과 그 가족들은 모두 분식집을 떠난다. 큰 몸집이 여자인 순덕이에게는 흠이었지만, 남자인 남재수에게는 무기가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착하게 사람들에게 퍼주다보니 마을 거지들이 모두 마음 분식으로 향하고 이를 마음에 들지 않아한 건물주는 순덕이에게 2주의 말미를 주며 가게를 빼라고 한다. 답답한 순덕이가 동호대교로 바람을 쐬러 갔을때 다리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존.잘.남. 견식을 만나고 그를 살린다. 견식의 꿈은 소믈리에였는데 뭔가 국내파로서는 양에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꿈을 이뤄주겠노라 말하는 순덕이와 견식은 프로방스 모텔로 향하는데....
다들 탄식과 짜증과 안돼~라고 하는 간절한 추임새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ㅋㅋ 나도 물론 입밖으로 안돼 소리가 절로 나왔고.. 착하게 사는 건 너무 힘들어요. 착하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요?라는 순덕의 질문에 그 누구도 쉬이 답할 수가 없다.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모티브로 한 억척가의 배경은 중국이 위, 촉, 오 삼국으로 나뉘어 싸우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조선에서 한없이 순종적인 여인으로 자라난 김순종이 시댁에서 소박맞고, 연변에서 나쁜 남자를 만나고, 중국에서도 별 그지같은 놈을 만나 아이 셋을 낳는다. 더이상 애를 낳지 않겠노라 지은 이름이 김안나. 김안나는 전쟁 후 시체들에서 화살촉, 장화, 투구, 반지 등을 주워 파는 전쟁상인이 되어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장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달구지는 인생의 전부였다. 첫째 용팔이는 조조의 군사가 되어 떠나고 둘째 정직이는 손권의 회계병으로 징집당한다. 셋째딸 추선이는 말은 못하지만 예쁘고 밝게 자라났다. 여기에 조선에 있을 때 알고 지낸 동생, 뺑마담과 말잘하는 사이비 천이도사라는 군식구까지 데리고 살았다.
어느날 집에 와서 밥먹고 떠난 정직이가 동탁의 군사들에게 잡혀가고 당장 2,000냥 아니면 2,000냥에 해당하는 달구지를 내놓지 않으면 정직이의 목을 자른다고 협박해왔다. 추선이가 정직이가 던져버린 금고를 가져오고 안나는 '달구지를 주고 금고를 가지면 돼'라고 생각하지만 금고를 깨보니 나오는 건 지푸라기뿐. 머리가 하얘진 채 멍하니 있는데 정직이가 이미 목이 잘렸다는 소식을 뺑마담이 전해온다. 군사들은 정직이의 목을 가지고 와서 정말 모르는 사람이냐 안나를 추궁하고, 안나는 이를 꽉 깨물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치워버리라고 말한다.
모든 역할을 이자람씨 혼자하는 극인데도 너무 살벌하고 저 장면에서는 진짜 이자람씨가 들고 있던 부채가 정직이의 수급처럼 보이기도 해서 섬뜩했다. 이거 연령제한 있어야하는 거 아니냐고요. 친구는 정직이가 노래하던 씬에서 클로즈업된 정직이에게 내적친밀감이 생긴 나머지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하다.. 우리 정직이 ㅠㅠ 내 인생의 전부, 내 미래의 전부를 아들 목숨이 달려있음에도 바로 내놓지 못한 모습도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머리가 하얘지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 감각을 너무 표현을 잘해서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금고를 잘 지켜서 엄마와 동생을 호강시켜주겠다던 정직이는 결국 손권 진영에서도 '미끼' 회계병으로 쓰이고 팽당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아마 그 모든 것이 혼합되어 안나는 이를 꽉 깨물며 피눈물을 삼키었던 거겠지.
안나는 정직의 죽음 이후로 뺑마담과 천이도사를 내쫓고 추선이와 함께 계속 전쟁상인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날은 어떤 농부의 집 앞 마당에 달구지를 맡기고 행장정비를 하며 며칠 머문다. 성 안에 물건을 팔러 하루 묵으러 갈 적에 추선이를 농부의 집에 맡긴다. 추선이는 달구지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군사들의 발소리가 들렸고 군사들은 농부에게 성까지 가는 지름길을 안내하라고 한다. 오늘 성을 습격할 것이라고. 추선이는 북을 들고 농부의 집 지붕위에 올라가 계속 북을 치고 이를 멈추지 않자 군인들은 총으로 추선이를 난사한다. 이 총소리에 성은 방비를 할 수 있었고 살아남은 안나는 피투성이가 된 딸을 보고 울부짖는다. 그녀는 이제 이름을 억척으로 바꾼다. 계속 살아가야 하지만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사람들의 옷을 벗기고 장화를 벗기고 투구를 벗겨 팔아가는 이 방식이 맞는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할까.
자식 잃은 어미의 모습이 너무 절절해서 숨도 쉬지 못하고 바라만 봤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결국 착하게 살면 추선이와 정직이처럼 되는 것일까!!
그런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돌려보낼 수 없다며 이자람씨는 앵콜로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눈을 뜨는 파트를 들려준다.
친구들은 심봉사는 착하게 살아서 눈을 떴다고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심청전을 읽고 내가 심봉사에게 느낀 감상은 귀얇은 호구....였기 때문에 쉽사리 동의할 수 는 없었다ㅋㅋ
앵콜 포함 장장 100분을 (원래는 80분 공연이었으나) 혼자서 (무대는 고수, 기타세션, 관객과 함께 만드는 것이라 했지만) 끌고 나간 그녀의 능력과 매력, 에너지에 다시 한 번 놀라고 감동했다. 물론 저런 구슬픈 소리, 어미가 자식을 잃은 소리, 즐거운 소리, 익살스런 소리 등을 내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만, 이런 극을 만들고 또 이걸 표현해내는 것까지 속된 말로 이것이 재능충인가 싶었다. 다음에는 정통 판소리를 보자! 해놓고 또 작창을 보았지만 ㅋㅋ 역시 이자람의 매력은 끝도 없다... 게다가 지금 순신 뮤지컬도 하고 있잖아?! 엄청나다... 판소리가 매력적인 것인지 그녀가 매력적인 것인지 궁금해서라도 다음엔 꼭 정통 판소리도 보아야겠다
나도 다른 친구도 몸이 좋지 않아 더 깊은 얘기는 못하고 헤어졌지만 돌아가는 길 카톡에서 다들 판소리 톤으로 톡을 날린 것을 보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던 무대였음은 분명하다.
갈아타지 않고 한번에 가려고 경복궁역으로 향하는 길에 본 광화문 월대가 아름답다.
요즘 점점 더 우리 것이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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